12화에서의 원작 비틀기, 13화에서 확인사살.
꿈을 꾸는 것인가? 9년간 1기, 2기, 리즈와 파랑새, 맹세의 피날레, 앙상블 콘테스트를 통해 착실히 원작의 내용을 따라왔기에, 3기에서 쿠미코가 전국대회에서 솔로를 불고 금상을 따는... 그 전개를 기대했다. 나처럼 처음부터 따라온 사람뿐만 아니라 3기를 통해 처음 접한 사람도 납득을 하지 못할 것이다.
"울려라! 유포니엄"의 주인공은 쿠미코다. 전적으로 쿠미코의 시점에서 작품이 전개된다. 다른 등장인물의 독백을 들은 적이 있는가? 오직 쿠미코의 독백뿐이다. 타인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으므로 전적으로 쿠미코의 시점에서 파악해야 하며, 그렇기에 쿠미코라는 인물에 더욱 몰입할 수 있다. 쿠미코의 기쁨은 나의 기쁨이요 쿠미코의 슬픔은 나의 슬픔이다.
3기가 전개되며 연주 장면이 사실상 없었다는 사실은 잠시 접어두자. 너무나 당연한 얘기라 꺼낼 가치도 없다. 다시 돌아와서, 3기에서 새로 등장한 캐릭터 "쿠로에 마유"는 작가의 편리한 도구로서 등장했다. 이대로 가면 쿠미코는 경쟁자도 없고 무난히 솔리 주자로 나서서 우승하는 전개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마유는 전국 금 단골 세이라 출신으로 프로를 노릴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실력자. 쿠미코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시키기엔 조금 무리가 있어 보이는 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마유를 활용해 쿠미코와의 갈등을 생성한다. 끝까지 반복되는 마유의 사퇴 의사 타진. 이건 나의 눈으론 이렇게 보였다. "내가 실력이 더 좋아서 나랑 붙으면 넌 무조건 떨어진다. 부장인 쿠미코가 떨어지면 부의 분위기가 안 좋아질 게 뻔하니 내가 물러나겠다." 쿠미코는 솔리를 불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것은 개인의 강렬한 욕망이지만 그 욕망에 져버리면 과거의 쿠미코는 물론, 실력주의를 믿는 다른 사람들을 모두 배신하는 것이 된다. 그렇기에 쿠미코는 달콤한 유혹과 의무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런 흐름을 마유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쿠미코가 비굴하게 허리를 숙여주길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 쿠미코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성장했는가? 부 내의 불만을 부장으로서 수습하기 위해 움직이는 쿠미코지만 오히려 그 분위기에 넘어가 갈피를 못 잡는 것처럼 묘사된다. "내가 마유보다 잘하지 못해서 솔로에 떨어졌어"가, "내가 잘 못한 게 아니야. 타키 선생님의 선택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로 넘어가며 흔들리는 모습은 쿠미코가 아직 미숙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장치다. 이거까진 좋았다만...
이후에 있는 전국 솔리 결정 파트를 생각해 보자. 간부들은 블라인드 테스트를 제안한다. 소리만 듣고 어느 쪽이 더 좋았느냐 거수투표를 하자는 것. 1학년 시절의 카오리와 레이나의 경우를 보는 듯하다. 하지만 여기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전국을 노릴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는 키타우지의 부원들이다. 그리고 매일같이 모두의 소리를 들으며 연습한다. 그런데 과연 서로의 소리를 모를까? 3기 내내 연주 장면은 하나도 없었지만 단순 시청자인 나도 소리를 구분할 정도였다. 쿠미코의 차례에 레이나의 소리도 좀 더 풍부해진 것처럼 들렸다. 모두가 소리를 구분하고 있었다. 블라인드 테스트는 눈 가리고 아웅 정도의 구색이었다. 그리고 타키도 쉽게 선택하지 못할 정도로 실력이 비슷하다고 했다. 그걸 증명하듯 결과는 반반. 레이나의 마지막 한 표에 달렸다.
레이나는 1번은 선택했다. 3년간 동고동락을 넘어 거의 동성애에 가까운 모습을 연출했던 둘이었다. 쿠미코를 배신하고 마유를 택했다. 사실 배신이라는 말도 순화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썅년이다. 가장 친한 친구의 등에 칼을 꽂았다. 술렁이는 장내. 쿠미코는 당황스럽지만 부장으로서 발언하며 장내를 정리한다. "이것이 키타우지의 베스트 멤버입니다.". 나의 가슴도 찢어졌다. 쿠미코에게 이렇게 비참한 일이 벌어지다니.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닌 레이나로 인해 벌어진 일이다. 슬픔과 허망함에 분노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그 산에 올라가 둘은 얘기를 나눈다. 레이나는 알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유를 뽑았다고. 그럼에도 쿠미코는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오마쥬를 통해 백합을 더욱 강조하는 연출을 보여줬다. 이때 난 쿠미코에 이입할 수 없었다. "쿠미코가 아닌 다른 사람과 솔로를 부는 건 싫다."라는 의견을 계속 표현한 레이나였다. 하지만 배신했다.
레이나의 가장 큰 문제는 "타키 광신도"라는 점이다. 타키의 말이 곧 법이며 정의다. 그게 잘못됐다는 생각 자체를 안 하고 맹목적으로 받아들인다. 타키의 방식에 의문을 가지는 쿠미코에게 "그럼 부장 실격이네"라고 고민도 없이 말했다. 이때부터 조짐이 있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전개될 줄이야. 이후에 쿠미코가 음대 진학을 하지 않겠다고 얘기한 부분에서도 레이나는 쿠미코와의 인연을 정리하려고 했다. 쿠미코는 레이나에게 있어 처음으로 깊은 인간관계를 맺은 유일하고 특별한 사람이다. 그런 쿠미코와 멀어지는 것이 두려워 아예 "여기서 끝"이라는 얘기를 하는 것은 레이나 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레이나가 타키 광신도긴 하지만 쿠미코를 정말 특별하게 생각한다고 보였다.
하지만 배신으로 그전까지의 서사 자체가 잘못된 것이 되었다. 그 장면을 납득시키기 위한 장치가 단 하나도 없이 원작대로만 흘러갔다. 그래서 쿠미코의 솔리 탈락을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오리지널 각본을 썼다면 그에 맞는 서사가 진행됐어야 시청자들이 납득을 하는데 그냥 딱 그 부분은 바꾼 것이다. 그래서 부조화가 일어나고 서사가 무너졌다. 레이나의 배신, 타키의 무능, 마유의 잘못된 활용이라는 삼박자가 갖추어져 "애니메이션 울려라! 유포니엄"이라는 작품 자체는 구제가 불능하게 됐다.
레이나는 타키의 전국 금상 유관을 위해 배신했다. 타키는 고문으로서 부의 분위기를 충분히 인식할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 책임을 회피하며 부의 분위기 악화에 일조했다. 마유는 정말 갈등만 일으키는 짜증 나는 캐릭터가 되어 쿠미코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특히 마유는 캐릭터 외형 디자인이 정말 잘 됐다는 점에서 더욱 시청자들을 짜증 나게 만든다. 먼치킨이라는 점만 빼면 정말 이렇게 소비하기 아까운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작에서도 있는 문제이기에 애니메이션에서 개선이 될까 기대한 부분이기도 한데 안타까운 일이다.
13화에도 이변은 없었다. 오히려 더 어이가 없는, 그 이상의 내용으로 방영됐다. 알아갈 기회도 없었던 조연들의 나열부터 연주는 사실상 스킵하고 보여준 쿠미코의 과거 회상. 심지어 연습 장면도 없었기에 자유곡에 애정을 가질 시간도 없었다. 그리고 마유의 솔리를 통한 확인사살. 대체 마유는 뭘 했다고,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다고 금을 땄다고 눈물을 흘리게 됐는가? 나의 혼이 끝까지 뽑히는 느낌이 드는 찰나, 갑자기 액자형으로 전환되며 올라가는 크레딧. 내가 씨발거 뭘 봤는지도 모르겠고 헛웃음만 나왔다. 아, 나의 유포니엄은 이렇게 비참하고 참담히 끝났구나. 원작대로 쿠미코는 키타우지 고등학교 취주악부 부고문으로 부임해 선생님이 되었다. 이것마저 원작 그대로다. 바뀐 것은 마유가 솔리고 쿠미코는 아니라는 것.
작품의 제목은 "울려라! 유포니엄"이다. 누구의 유포니엄을 울리는지는 당연히 정해져 있다. 우린 마유의 유포니엄이 전국 회장에서 울리는 것을 보고 들으려 지금까지 봐 온 것이 아니다. 애니메이션 9년간의 여정은 무능한 제작진에 의해 잔혹하게 끝났다. 이상한 각본을 쓴 상습범 "하나다 쥿키", 그대로 만든 감독, 마지막으로 가장 큰 문제인 원작자. "시로바코"의 내용이 큰 틀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의 현실을 따른다면 원작자는 신의 영역에 있다. 그의 한마디로 모든 것이 엎어질 수도 있는 위치다. 그 원작자가 OK 사인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것은 순수 예술이 아니라 상업 예술이다. 돈을 벌기 위해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트위터에 최고의 애니였다고 올리는 사람들처럼, 뭘 하든 좋다고 해주는 사람들이 BD는 사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미래에도 사준다는 보장이 있는가? 믿었던 쿄애니였는데 이렇게 통수를 칠 줄이야. 천하의 쿄애니가 돈이 부족하구나, 인력이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 3기였다.
내 개인적 입장에선 마유의 전국 솔리를 탄탄히 빌드업해서 개연성과 핍진성을 모두 챙겼다 한들 맘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쿠미코가 울리는 유포니엄을 듣고 싶었던 거니까. 처음부터 유포니엄을 애정하며 봐 온 시청자들이라면 공감하지 않을까. 그야 "미자견"이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볼 이유가 없을 거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현실성을 챙겼다고 하더라. 물론 핍진성은 중요하지만, 왜 쿠미코 개인의 성장이 포인트인 이 작품의 결말에서 성장이 막힌 주인공을 굴러들어 온 빠요엔이 자리를 꿰차고 믿었던 동료에게 잔인한 배신을 당해야 하는가? 정말 「なんですか、これ。」가 아닐 수 없다. 쿠미코가 마지막에 「ようこそ」라고 하며 1기의 타키처럼 환영하는 그 몸짓을 보고 "정말 이게 뭐란 말인가?"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유포를 살리기 위해선 [원작 전개 극장판 + 부고문 쿠미코의 얘기를 다룬 OVA 몇 화] 이 정도가 아니면 안 된다. 쿄애니가 죽였으니 쿄애니가 다시 살려내야 할 것이다. 사고 친 놈이 책임을 져야지. 성자필쇠라고 했던가. 쿄애니가 과연 그런 것 같다.
생각난 김에 하나 더 말해보자면, 전국 금상에 어울리는 곡은 「리즈와 파랑새(リズと青い鳥)」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한 해의 시(一年の詩)」가 곡이 좋지 않아서, 극 중에서 많이 듣지 못해서가 아니다. 단순히 곡의 구성 자체가 대단원에 가장 어울리기 때문이다. 1, 2악장도 듣는 즐거움이 매우 크지만 3악장에서 미조레의 오보에와 노조미의 플루트의 조합은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멜로디를 자아낸다. 감히 내가 문장으로써 그 감정을 다 형용할 수 없으리라. 4악장의 후반부는 목적지를 향해 화려하지만 필사적인, 그런 느낌을 전달하며 엄청난 여운을 남기며 곡이 마무리된다.
오히려 난 이런 연주를 하고 관서딱을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는다. 소설에서는 당연히 소리를 전달할 수 없으니 상관없지만, 애니메이션은 시청각매체. 그 곡의 완성도는 전국 금상도 부족할 정도였다고 생각한다. 좋은 곡을 매우 아름답게 연주해 준 「센조쿠(洗足) 학원 음악 대학」의 공로도 빠질 수 없을 것이다.
좋아하는 어떤 것이 망가지는 것을 보는 건 매우 가슴 아픈 일일 것이다. 유포니엄이 무너지는 이 상황이 나를 비분강개하게 만든다. 관계자와 응원한 팬 모두를 배신한 쿄애니에 대해 난 이런 감정을 가진다. 내가 알던 그 쿄애니가 없어졌다는 悲, 작품을 망친 것에서 비롯한 墳. 그래서 慷慨하는 것. 이런 결말이 기다리고 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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