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아카이브, 명일방주, 원신, 붕괴. 이들의 공통점은 '수집형 미소녀 모바일 게임'이라는 범주 안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럼 또 다른 이들의 공통점은 뭘까? '가챠(뽑기)로 캐릭터들을 뽑아야 한다'는 점이다. 가챠. 이것이야말로 게이머들의 재정 건전성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며 국가를 좀먹는 사회악으로 규정해 마땅한 것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도박이다. 재화를 걸고 이길지 질지 알 수 없는 것에 오직 확률만을 믿으며 가챠용 재화를 구매한다. 흔히 트럭이라고 부르는 10만원 안팎의 가장 큰 패키지를 구매한다고 해도 100 연차를 돌릴 수 있는 게임은 본 적이 없다. 내가 안 해봤을 수도 있지만... 여하튼 10만 원이란 돈을 쓰더라도 가챠를 많이 돌릴 수 없다. 10만원어치로는 어림도 없다. 10만원이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말이지. 예전에 아르바이트를 할 때 일당으로 10만원을 받았다. 힘들게 번 10만원을 그딴 도박에 쓴다는 발상 자체를 하지 못했다.
돈은 나만 힘들게 버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힘들게 돈을 번다. 남 돈 버는 게 쉽기가 더 어렵다. 그렇게 힘들게 번 돈을 가챠에 꼬라박는다고? 이건 미치지 않고서야 불가능하다. 수십만원을 투자해 겨우 캐릭터 하나 뽑는 것에 그 만한 가치가 있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해 보자. 게임 A의 천장은 40만원이다. 새로운 캐릭터인 'B'를 출시했고 가챠로 뽑을 수도 있고 30만원을 주고 즉시 얻을 수도 있다. 사람들은 아마도 가챠로 뽑는 것을 선호할 것이다. 천장만 보면 가챠가 더 비싸지만, 그만큼의 돈을 쓰기 전에 뽑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소비하는 재화의 양을 줄이기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30만원보다 더 돈을 쓰게 된다. 확률이 만만하지 않다. 그럼 이번에 교훈을 얻었으니 다음 가챠에서 선택해야 할 최적의 선택지는 어떤 것일까? 또 가챠에 도전? 아니면 즉시 구매?
둘 다 틀렸다. 답은 그딴 쓰레기 사이버 파칭코와 작별하는 것이다. MMORPG를 생각해 보자. 확장팩마다 새로운 직업이나 캐릭터가 추가되기 마련이다. 이를 플레이할 권한을 얻기 위해선 확장팩의 구매가 필요하다. 확장팩을 얻기 위해 가챠를 돌린 적이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50달러도 되지 않는 돈으로 정말 많은 걸 플레이할 수 있는 권리를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얘기를 하면 "게임 스타일이 다른데 그런 식으로 비교하는 것은 잘못됐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일단 난 잘못된 비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게임'이며 '지불을 통해 권리를 구매'해야 하는 것은 똑같으니까.
수십만원 써서 고작 캐릭터 하나 얻기 vs 5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확장팩 구매
얻을 수 있는 만족의 가치가 정말 다르지 않을까? 물론 만족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전자를 더 가치 있게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아까 말한 대로 40만원 천장인 시스템에서 30만원에 캐릭터를 얻을 수 있는 선택지가 주어졌을 때 과연 가챠 하지 않는 쪽을 선택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에 어떻게 대답할지 궁금하다.
만약 가챠를 선택했다면 그 캐릭터를 얻는 데 들이는 비용으로 30만원은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말도 안 되는 가격임을 인식하지만 도박이 그 인식을 저하시킨다. "난 바로 뽑을 수 있어.", "쓴 돈아 아까우니까 일단 뽑자." 하는 마인드를 갖고 있지 않나? 누적 포인트로 돌파 재료를 교환할 수 있는 걸 생각해도 수지가 안 맞다. 그럼에도 일종의 자기 암시를 거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나도 모 게임에서 캐릭터를 뽑기 위해 20만원 정도 쓴 일이 있었다. 기회비용이 아까웠다. "하... 이만큼 왔는데 뽑을 건 뽑아야지." 하며 돈을 더 쓰고 만 것이지. 뽑고 나서 좀 있다 보니 내가 정말 미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딴 걸 위해서 내가 그만한 돈을 썼다고? 그 뒤로 환불 절차를 밟고 모든 모바게를 접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을 매기자면 3위 안에 들 것이다. 도박을 끊은 거니까 가치가 있다.
도박은 단순히 현재의 재화를 쓰는 것이 아닌 미래를 팔아 지금 쓰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하루 벌어 하루 살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이 60, 70 넘어서까지 내가 돈을 벌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도박에 빠져 미래의 자신을 곤궁하게 만들지 말아야만 하겠다. 자신이 모바게에서 하는 가챠와 영화에 나오는 도박판과 다른 점은 금액의 단위일 뿐이라는 것을 모두가 인식했으면 한다. 제발 탈출해..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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