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F14를 시작한 지도 만 8년 정도다. 글로벌 서버와 연이 닿은 지는 7년 정도. 오래 했다면 오래 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시리즈도 아니고 하나의 게임을 이 정도까지 한 것은 FF14가 처음이다. 그만큼 나에게 의미가 깊은 게임이기도 하다. 하지만 요즘은 좀 멀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FF14는 나에게 매우 가까운 존재다.
사실 나에게 있어 FF14의 재미는 「신생 에오르제아」부터 「창천의 이슈가르드」까지의 구간이 피크 구간이었다. 홍련같은 쓰레기 확장팩에 대해선 얘기하지 않겠다. 「칠흑의 반역자」와 「효월의 종언」도 처음의 큰 줄기의 스토리만 재미있었다. 나머진 글쎄... 인상에 남지 않았다.
신생으로 새로 태어난 스토리, 제7영재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은 워크래프트3에서 리치왕의 분노로 이어지는 그 감동과 동급이거나 그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해 줬다. 해후 1층에서 만나 카두케우스부터 진성 4층의 바하무트 프라임까지. 음, 물론 해후 3층은 빼는 게 맞을 것 같다. 의도는 알겠으나 전달엔 확실히 실패했다. 해후 5층은 정말 쉽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기믹들이 참 단순하지만 유저에게 재미를 주는 데엔 문제가 없었다. 침공은 또 어떤가? 2층에서의 르노 주차는 생각보다 까다로웠지만 유격대만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느낌이 들어 내가 RPG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줬다. 3층은 역시 피아니스트 매크로의 덕이 컸다. 여기서도 유격대만의 특징이 살아서 재밌었다. 4층은 정말 내가 고난도 컨텐츠를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당시에도 100% 이해하고 클리어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대망의 진성편. 정말 힘들게 깼던 2층. 새벽에 반고정 파티원들과 함께 사투 끝에 클리어해 기억이 남는다. 그리고 3층에서 등장하는 피닉스와 벤누를 넘어, 4층에서 마주한 바하무트. 그리고 「Answer」와 함께하는 최고의 연출. 페이즈 전환 테라플레어와 아크몬은 가히 당시엔 큰 충격이었다 할 수 있다.
창천으로 넘어와서도 제7영재로 인해 벌어진 커르다스 지방의 변화한 기후와 그 속에 숨어있는 이슈가르드라는 무대는 게이머들을 자극시키는데 충분했다. 기공성 알렉산더 레이드는 또 어떤가? 스토리와 연출도 물론 최고였지만, 「정말 도전하는 맛이 있는 어려운 레이드」라는 느낌에 정말 즐거웠다.
물론 기동 3층은 정말 쉽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재밌었다. 기동편엔 즐거운 추억이 많다. 그냥 창천 레이드 자체가 마스터피스였다. 천동에서 맛이 조금 바뀌긴 했지만 나쁜 의미로 바뀐 것은 아니다. 이후 「절 알렉산더 토멸전」이 공개되었을 때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아직도 3페이즈 도입부의 「시간정지」와 첫 클리어 할 때, 공대원들이 한 명씩 갇히면서 최후의 최후까지 체력을 깎아 나갔고 결국 첫 클리어에 성공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기억을 떠올려도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그런 추억이 있기에 요즘의 레이드에 외려 슬퍼지기도 한다. 레이드가 기억에 남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창전까지의 레이드는 기억이 매우 선명하지만 그 뒤의 레이드에 대해선 보스의 생김새조차도 단박에 떠오르지 않는다. 매너리즘에 빠진 것일까?
그간의 레이드들에 대해선 사실 별 생각이 없었다. 별 생각이 없었다는 것은 특히 모난 곳은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누군간 연옥 4층의 딜컷에 대해 얘기할 수도 있지만, 그건 너프를 하면 안 됐다고 생각한다. 최고난도 컨텐츠에 걸맞은 딜컷이었다고 생각했는데 개인적으로도 상당히 아쉽다. 그런데 이제 와서 천옥이 망가져서 나왔다는 느낌이 든다. 첫 주차부터 공팟으로 뛴 시즌 중에 1주 차에 3층을 깨지 못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2층에 시간을 다 빨려서 3층을 제대로 트라이할 시간조차 없었다. 그런데 막상 3층 가니 그렇게 쉬운 게 없었다. 장난치는 건가?
1층은 그놈의 싸커킥이 문제다. 사실 그 층 전체가 2층으로 가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난이도를 갖고 있다. 아니 어쩔 땐 나머지 2 3 4층 파밍에 걸리는 시간 이상을 1층에 투자하기도 했다. 쉬우면서 어려운 층이다. 딜컷이 널널한 만큼 많이 죽어도 대충 클리어 딜이 나오기 때문에 기믹을 구경할 일이 잘 없다. 그걸 감안해도 1층치곤 어렵다고 생각한다. 연옥 1층보다 더한 1층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에 대비되는 것 같기도 하다.
2층은 3본드가 정말 고비였다. 2층에서 한 명만 없어도 꼼짝없이 죽어야만 하는 4인쉐어라니 세상에. 즉사급 데미지라 뎀감도 소용이 없는 건 정말 막 나가는 게 아닌가 생각도 든다. 2층에서 말이지. 3본드를 넘기면 진격이 있다. 왜 벽을 못 만들고, 연속광 때 뎀감이 지지리도 되지 않는가? 아직도 2층은 대단한 고비이다.
3층은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았다. 공팟 친구들이라도 어떻게 해결은 가능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4층은 역시 4층이었다. 그 템포와 그 능지 체크 기믹들은 공팟을 박살 내기에 충분한 수준을 넘어 남아돌았다. 나도 모든 기믹에 완벽히 익숙해지고 최적화된 딜 사이클을 만들어 가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전반의 킬러 기믹이라고 하면 초끈이론에서 이름을 따온 듯한 초사슬이론(맞는 번역일까?) 기믹들이 있다. 타임라인을 외우는 것이 중요하다. 템포도 빠르기 때문에 신속한 이동이 중요한 기믹이다. 나도 처음엔 체인AB가 너무 적응이 안돼서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사이코로도 정말 큰 장벽이었다. 후반 클목팟이라도 전반을 쉬이 넘기리란 보장이 없다. 난 어찌 좋은 사람들을 만나 4층 클리어에 성공했지만 다시 연습하러 공팟에 가보니 지옥도가 따로 없더라. 나 같은 놈과 함께 해주는 공대원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사실 4층의 진가는 후반에서 드러난다. 이데아 엘레멘탈이라는 기믹이 정말 기가 찬다.
삼각형이나 사각형이 파란색 도형에 들어가면 터져버리는 기믹인데, 이게 정말 공팟을 박살 내는 미친 킬러 기믹이다. 나중엔 저기서 점대칭으로 이동해 처리해야 한다. 만약 처음에 자리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면 오직 전멸만이 기다린다. 이것뿐만 아니라 이동거리 제한을 거는 신박한 기믹이 있으니 「칼로리 이론」 되시겠다. 이 정도로 이동을 최소화하는 기믹이 내 기억엔 없었던 것 같다. 이런 기믹이 없는 상태에서 나와버리니 정말 악랄한 기믹이 될 수밖에 없다.
요시다는 분명 갈수록 쉬운 겜을 지향한다고 했다. 그 기조는 천동 때부터 계속 선을 잘 지키며 이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연옥 4층에서 깨지고, 천옥에서 또 깨졌다. 정확히 같은 시기는 아니지만 클리어 비율로 비교해 보자.
위의 이미지는 2022년 10월 31일에 저장된 스냅샷을 나타낸다.
아마 8주 차쯤 됐을 것이다.
이건 2023년 7월 10일 현재의 상태이다.
6주 차를 거의 마무리해 가는 시점인데, 전체적으로 클리어 캐릭터의 숫자가 적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당장 일본 커뮤니티든 한국 커뮤니티든 천옥 난이도에 대해 말이 많이 나오는 만큼 기존의 난이도 기조에 반하는 건 맞는 것 같다.
이런 생각도 든다. 천옥의 개발과 FF16의 개발은 동 시기에 이루어졌다. 둘 다 책임자는 요시다 프로듀서이다. 천옥보다 출시 직전인 FF16의 마스터링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에 14 개발에 대해 이전처럼 관심을 가져주지 못해 세세한 디렉팅을 할 수 없었고 그게 천옥의 난이도 실패로 이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 실제로 이번 시즌에 낱장 요구 개수도 줄었고 드랍 테이블에도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불만을 예상하고 최대한 빨리 천옥 시즌을 정리하고 FF16이나 하러 가라는 큰 그림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근데 또 다른 MMORPG를 하려 가려니 좀 그렇다. 이만한 게 정말 없다.
여하튼 내가 생각하는 이번 시즌의 PASS / FAIL 여부는 아래와 같다.
- 1층 - FAIL
- 1층치고 만만하지 않은 기믹. 수틀리면 1릴은 기본. - 2층 - FAIL
- 얘는 왜 3층이 아님? - 3층 - FAIL
- 얘는 왜 2층이 아님? - 4층 - PASS
- 4층이 기믹으로 탄탄히 무장했다. 너무 널널한 딜컷과 초기 버그가 흠. - 총평 - FAIL
- 게임이 병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너무 강하게 와 슬퍼졌다.
개인적으로 천옥은 요시다 개인의 기조에도 정면으로 반하면서 세기말에 너무 힘든 걸 던져줬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갈수록 QA의 질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어서 요시다는 이미 후임에게 14를 던져두고 다른 걸 하러 간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신생한 지도 벌써 10년이다. 확실히 연식이 많이 됐다. 제2의 신생이 돼줄 뭔가를 기다릴 뿐이다.
Reference 및 이미지 출처
ぬけまるG님의 공략 동영상
진성 4층 아크몬 이미지
https://youtu.be/Y-wfNNi14BE?t=619
절 알렉산더 전멸기 이미지
https://youtu.be/KPXmKwq9zFk?t=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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