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Disclaimer
게임을 제대로 평가할 만큼 많은 시간을 플레이하지 못했다. 최소 10회 차는 플레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회차 플레이 후 작성하는 초기 의견을 담았다.
23/09/06
3회차 중간 쯤.
일부 내용 수정.
2023년 9월 1일. 대망의 「Starfield」 얼리 엑세스 당일. 스카이림을 12년, 폴아웃 4를 8년을 해온 진짜 드로거인 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날. 자신의 로망을 이룰 수 있는 힘을 가진 토드 하워드는 자신의 진심을 기다리는 유저들에게 「갓겜」의 형태로 전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나는 배신감을 느끼고 말았다.
1. 와 커마 지렸다
2023년에 출시되는 게임이라고 커스터마이징이 전작들에 비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전작에선 모드를 통해 구현해야 했던 몇몇 기능들이 공식적으로 지원되는 것에 감탄했다. 비주얼적으로도 매우 발전됐기 때문에 매우 인상적이다.
특성이나 배경을 설정하는 부분도 이전의 베데스다 작품에선 찾아볼 수 없는 요소이다. 초반 빌드에 대한 선택지가 늘어난 듯하여 꽤 맘에 들었다. 그러고 보니 성별 구분도 없었다. 체형이나 걷는 스타일을 선택할 수 있게 해 놨더라. PC를 의식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게 더 괜찮은 것 같다.
다시 보니 인물 표현이 디테일이 말도 안되게 좋아졌다. 베데스다는 분명 게으른 놈들이었는데 거 참 기가 막힌다.
2. 임팩트 없는 첫 전개
전작을 플레이 해 본 사람이라면 대체로 공감할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약간 「어쩌라고?」 같은 감정이 들기도 한다. 스카이림의 첫 장면을 기억하는가? 폴아웃 4에서 처음 볼트를 나올 때 보이던 그 광경이 주는 충격은? 이런 도입부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실례인 것 같다. 정말 같은 디렉터가 만든 작품이 맞는 것일까?
이를 지나 사형 직전 알두인이 등장하고 정신없이 헬겐을 탈출해 나만의 모험을 시작하는 과정이 주는 임팩트를 이길 작품이 과연 나올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폴아웃 4에선 볼트를 처음 나설 때, 황량한 커먼웰스의 풍경을 보여준다. 핵이 가져오는 파멸을 경고하는 그 메세지를 단 한 장면으로 표현해 냈다.
하지만 스타필드엔 이러한 감동이 없었다. 광질 좀 하다가 따라가 보니 어떤 「아티팩트」를 발견헀고, 이를 만지니 어떠한 초자연적 힘에 의해 환영을 본 후 기절했다. 다시 깨어나니 커마창이 플레이어를 반겨준다. 난 이 시퀀스를 보고 아래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 똥겜일 거 같은 이 불안한 느낌은 대체 뭐지?
나의 이 예감을 확인하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으로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나가서 다른 행성으로 간 순간 알아버리고 만 것이다. "스타필드는 전작의 장점을 계승하지 못했다."라는 것을...
3. 실내 수영장
커뮤니티를 보니 혹자는 우주 컨텐츠를 「실내 수영장」이라고 표현하더라. 이거만큼 제대로 설명해 줄 말이 더는 없을 것이다. 스타필드의 우주는 실내 수영장이긴 한데, 풀에 물이 꽉 차있는 것이 아니라 칸막이로 풀 내부를 매우 잘게 쪼개 놓은 것과 비슷하다. 처음엔 큰 바다에서 자유롭게 오가며 놀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수많은 칸막이가 존재하며 결국 밖으로 자유롭게 나갈 수 없는 실내 수영장이라는 것이다.
우주도 있고 우주선도 있으니 자유롭게 우주를 비행하며 다른 행성이나 항성계로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베데스다 특유의 Cell 방식으로 모든 게 구현되어 있었다.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선 무조건 빠른 이동을 해야 한다. 아래와 같이 오랜 시간을 들여 화성에서 그 위성인 포보스까지 가는 수도 있다. 어찌 보면 심리스인 셈인데, 이리 오래 걸려서야 심리스라고 할 수 있겠는가?
https://www.youtube.com/watch?v=Ya_GFFV17_U
사실상 "빠른 이동이 강제되며 다른 이동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착륙 또한 단순히 컷씬에 불과하다. 유저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일체 존재하지 않는다. 유저들은 결과적으로는 빠른 이동으로만 움직일 것이고 이착륙 또한 간단한 방법을 택하겠지만, 선택지를 줬어야 했다. 자유롭게 심리스 우주를 비행하며 이착륙 시퀀스를 수동 조작할 수 있는, 진짜 우주를 여행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요소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유저들의 니즈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4. 메인 퀘스트는 진짜 메인 퀘스트인가?
메인 퀘스트의 비중 및 중요도가 매우 떨어진다는 인상을 받는다. 특히 메인 퀘스트로 제시되어야 할 세계관 안에서의 궁극적인 목표가 사실상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유물을 모으라니 모은다. 어? 이제 보니 이건 다중우주를 넘나들게 할 수 있게 해 주는 「유니티」로 가기 위한 일종의 열쇠 같은 것이었다. 유니티를 통해 다른 우주로 가서 새로운 회차를 시작한다. 그럼 결국 메인 퀘스트는 회차 플레이를 위한 도구로서의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서브 퀘스트의 완성도가 매우 높고 게임의 주요 컨텐츠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니 메인 퀘스트의 취급이 영 아니다. 공식적으로 회차 플레이를 지원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지만 메인 퀘스트가 재미가 없으니 김이 엄청 빠지고 플레이에 대한 동기를 잃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스카이림은 NPC들 대사를 하나하나 다 외울 정도로 플레이했었는데, 스타필드는 그만큼 할 자신이 없다. 아니, 재미없는 걸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
회차가 넘어가면 무소유의 정신으로 돈이며 장비며 함선과 거점도 다 날아가기 때문에 이런 컨텐츠에 대한 동기부여가 생기지 않는 것도 너무 큰 단점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회차를 돌지 않으면 성장에 유의미한 한계가 찾아온다. 더 성장하려면 지금껏 이뤄온 모든 성과를 포기해야만 한다. 원래 회차라는 것이 그렇지만 다크소울도 아니고... RPG에서... 이게 맞나...?
진짜 메인 퀘스트는 팩션 퀘스트들이었다. 이 엄청난 몰입도는 대체 뭐란 말인가? 메인 퀘스트는 그저 서브 퀘스트를 진행하고 회차를 돌리기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폴아웃4의 그지같던 팩션들을 돌아볼 때 스타필드의 팩션은 저마다의 매력이 넘치고 그 마무리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렇다고 메인 퀘스트가 빈약한 게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게임의 근간을 책임져야 하는 메인 퀘스트가 그래서야... 나는 정말 반쪽짜리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5. 전투는 뭐 그럭저럭
사실 폴아웃 4의 냄새가 너무 난다. 스타필드만의 차별화된 전투 시스템이 있는 것은 아니다. 총이 메인인 RPG가 대체로 그렇지만 어떻게 차별화를 해야 할까 같은 고민을 한 것 같지 않는 듯하다. 그래도 파쿠르가 공식적으로 지원돼서 이동의 선택지가 늘어난 것은 호평할 만하다. 그런데 20년 전 콜오브듀티에도 있던 벽 넘어가기가 이제야 생긴 건데 이걸 칭찬해야 하는 것인가?
우주에서의 함선 간에 이루어지는 전투도 플레이어의 시선을 당기는 무언가가 없는 것 같다.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 것일까? 그동안 베데스다의 게임이 너무나 잘 만들어졌고 재미가 가득했기에 그만큼 실망이 큰 것일까? 그냥 우주에 나가서 적과 뿅뿅뿅만 주고받을 뿐이다. 이러면 지면에서 총을 통해 이루어지는 전투와의 차이점은 이동 방식일 뿐이다. 못 만들었다는 것은 아니다. 2015년 기준으로 본다면 말이지... 2023년에 나올 물건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투는 여전히 좀 그렇다. 은신 시스템도 뭔가 더 불합리하게 바뀐 것 같기도 하다. 어떻게 여기 있는 걸 발가락 끝만 노출돼도 아는 거지? 같은 느낌. 함선 전투에 대해선 동력 시스템을 통해 유기적으로 교전하거나 다른 성계로 점프를 통해 도망치는 등 사용자의 선택 폭을 넓힌 것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전투 자체가 재미있냐고 하면 글쎄... 아 그냥 우주선이 있으니, 전투도 되긴 해야지 하는 느낌으로 있는 것 같다. 뭐 그렇다고 나쁜 것은 아니다. 기대한 만큼의 대단한 무언가가 없어서 아쉬울 뿐.
6. 모드로 살릴 수 있는가?
모드 잠재력은 기대해 볼 법하다. 스카이림도 기가 막히는 모드가 아직도 나온다. 스타필드의 경우도 확실히 기대해볼 법 하다. 커마부터 시작해서 게임 시스템까지 많은 것을 뜯어고칠 수 있을 것 같다. 혹시 아는가? 모드로 진짜 심리스가 구현될. 기술 발전이 너무 빨라서 허무맹랑한 소리도 진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전체적으로 모델의 퀄리티가 올랐고 PBR(물리 기반 렌더링)이 도입되었기 때문에 더욱 다양한 모딩 생태계가 생기리라 기대된다. 근데 모더도 사람인데 게임이 재미없으면 모딩에 대한 동기부여도 되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SKSE의 스타필드용 포크인 SFSE가 릴리즈 됐다는 점에서 빠른 시일 내에 스크립트를 활용한 기가 막힌 무언가가 나와줄지도 모르겠다. 정식 릴리즈도 아니고 아직 얼리 액세스 중이다. 1 ~ 2년 후의 스타필드가 어떻게 변할지 기대된다.
7. 총평
그간 베데스다 작품의 퀄리티를 생각해 보면 스타필드는 실패한 작품인 것은 맞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비교하자면 평작 정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더군다나 올해 GOTY는 따놓은 당상이라고 모두가 생각했을 정도로 기대가 컸으니 실망감이 이만저만이 아니긴 하다. 그리고 올해 경쟁해야 하는 게임이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킹덤」과 「발더스 게이트 3」이다. 싸움이 안 되는 수준이다. 특히 발더스 게이트 3는 역대급 자유도로 엄청한 퀄리티를 자랑했다.
스카이림 메타크리틱 점수가 94점이고 발더스 게이트 3는 96점이다. 스타필드는 88점인데 이건 친 MS 성향의 웹진들이 뻥튀기 점수를 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난 78 ~ 82점 정도가 적정하다고 본다.
회차를 진행하면서 경험한 다른 여러 컨텐츠들로 인해 점수가 좀 올랐다. 팩션 스토리들의 퀄리티가 매우 뛰어나므로 점수를 상향 조정해 85점 정도.
이번에 한글화도 안 됐고, 게임 내용물도 영 아닌걸 보니 엘더 6가 정말 걱정되기 시작했다. 토드 하워드의 신화가 엘더 6에서 완전히 박살 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더 커지기 시작했다고 느낀다.
이 부분은 어느 정도 기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브 퀘스트들의 완성도가 매우 뛰어나고 일부 팩션은 메인 퀘스트에 편입이 되어도 정말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상에 펼쳐진 심리스 오픈월드에 뛰어난 퀄리티의 퀘스트들, 그리고 더 발전된 비주얼이라면 GOTY 수상은 문제도 아닐 것이다.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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