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란 걸 처음 해본게 아마 5 ~ 6살 쯤이었던 것 같다.
그때 해본 게 「페르시아의 왕자」였을 것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난 단순히 게임을 플레이 하는 플레이어의 입장이었다.
그러다 어쩌다 플레이 하게 된 게임이 있으니,
바로 「Medal of Honor : Allied Assault」였다.
이 게임이 내 진로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큰 분기점의 역할을 했음은 자명하다.
게임이 발매 된 2002년 당시를 생각해보면 정말 센세이셔널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비주얼적으로도 훌륭하지만 "게임"이라는 주제에 완벽히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 올해 문득 생각이 나서 다시 플레이 해 봤는데 여전히 재밌더라.
오히려 퇴화하는 현대 게임들에 대한 슬픈 감정이 느껴졌다.
게임은 종합예술이 아니던가?
예술은 가치를 인정받으면 시간이 지나 Classic이 된다.
MOH : AA는 말그대로 FPS 장르의 Classic이라 할 수 있다.
진정한 게임은 시간이 지나도 플레이어에게 재미를 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정의하는 "게임"이란 다음과 같다.
플레이어가 게임 속 세상에 빙의한 듯 몰입하여 재미를 줄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 형태의 종합예술작품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게임의 범위는 매우 좁다.
모바일 게임은 논외다.
「Infinity Blade」말곤 모바일 게임에 몰입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
특히 요즘 가챠가 메인이 된 서브컬쳐계 모바일 게임들은 게임이라고 부를 수 조차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모바일이라는 플랫폼의 특성 상 접근성이 뛰어나고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는 플레이를 강조하는 만큼,
흔히 말하는 "바쁜 현대인"들의 니즈를 충족하는 형태가 된다.
단기적으로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많은 게임 회사들이 선호한다.
자본주의 논리가 두렵다.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게임"이 자본주의 논리에 깎여 나가는 느낌이다.
"게임"은 상품이지만 예술작품이기 때문에 미학을 가져야 하지만 단순히 상품으로만 취급되어 가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한 다른 Classic으론 「Call of Duty」와「Battlefield」 프랜차이즈가 있다.
장르의 고전이라 불릴만 한 "게임"으로서의 재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들이 최근 "게임"에서 멀어지는 것을 보니
슬픈 감정이 올라온다.
특히 COD MW2의 경우엔 허무하다는 인상이었다.
매출은 프랜차이즈 역사 상 최고의 매출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내용물은 전혀 "게임"이 아니었다.
요즘의 서양 게임 업계를 잠식한 "PC" 라는 병이 스스로를 몰락시키고 있다.
MW2도 그 피해자인 것이다.
이건 Battlefield 프랜차이즈의 최신작인 「Battlefield 2042」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프랜차이즈의 팬이었기에 더 고통스러운 현실이다.
특히 BF2042의 전작인 「Battlefield 1」과 「Battlefield 5」를 생각한다면 2042는 모든 면에서 퇴화했다.
비록 BF5도 출시 초기 PC와 관련한 잡음이 있었으나 시간을 거치며 관련한 문제가 수정되어 게임이 정상 궤도로 돌아왔다.
기술적으로도 뛰어났고 "게임"으로서도 뛰어났다.
그리고 BF2042의 Reveal Trailer가 공개됐고 나를 포함한 모든 팬들이 열광했다.
특히 이 랑데주크 장면은 그동안 실망스러운 행보를 보여주던 DICE가 자신들의 뿌리를 다시금 깨닫고 회귀한다는 인상을 줬기 때문에 실제 게임을 플레이 한 후, 기대가 큰 만큼 큰 실망으로 다가왔다.
MW2는 또 어떤가?
성공한 전작의 DLC 수준에 머물러있다.
게임 개발도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항상 높은 퀄리티를 유지하며 전작을 뛰어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러기 위한 고민의 흔적 조차 보이지 않으면 게이머로선 힘 빠지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게임의 트렌드를 선도하던 서양 게임 업계는 어쩌다 일본 게입 업계에 자리를 내주게 되었는가?
그 원인으로 꼽을 수 있는 몇가지를 생각해 봤다.
- PC같은 장난질이 없다.
일본 게임들은 절대 현실 정치를 게임에 끌고오지 않는다. - 개발자들이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있다.
게임의 디테일에 신경쓴다는 것은 애정이 있기 때문이다. 애정이 없으면 관심도 없다. - 게임에 몰입할 수 있는 합리적 전개를 제시한다.
요즘 서양 게임들의 전개는 전혀 합리적이지도 않고 논리적이지도 않다. 일본 게임들은 진부하지만 납득할 수 있는 물건을 제시한다.
특히 이런 문제는 스토리가 중요한 MMORPG 장르에서 드러나는데, 그 예시로 일본의 「Final Fantasy XIV」와 미국의 「World of Warcraft」를 생각해볼 수 있다.
세대가 다르지만 현재 경쟁하는 MMORPG계의 투톱이라는 관점에서 비교해볼 수 있겠다.
WoW는 2004년에 출시한 만큼 Burning Legion(07) ~ Wrath of the Lich King(08)을 잇는 전성기를 이미 지나왔다.
이후 Cataclysm부터 하락세를 기록하며 Legion에서 반짝했으나 다시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리치왕의 분노는 워크래프트3에서 벌어진 모든 일에 종지부를 찍는다는 느낌이어서 스토리의 완결에서 오는 감동과 여운을 충분히 준 가장 성공적인 확장팩이었다.
모든게 일단락 됐다는 느낌 때문일까?
나도 대격변부터는 WoW의 플레이를 멈췄던 것 같다.
Shadowland에 복귀했지만 여전히 실망스러웠기에 오래 플레이하지 못했다.
FF14는 2010년에 첫 출시를 했으나 "게임"이라 부를 수 없는 수준의 물건이었기에 요시다 나오키(吉田直樹) 프로듀서 겸 디렉터를 기용하여 2013년에 화려한 부활에 성공했다.
A Realm Reborn(新生エオルゼア) 부터 지금의 Endwalker(暁月の終焉)에 이르기까지 Stormblood(紅蓮の解放者)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것 이외엔 쭉 상승가도를 달려왔다.
감히 WoW를 이을 장르의 최강자라 할 수 있다.
WoW는 WotLK 이후 Cataclysm, Warlords of Draenor, Battle for Azeroth의 3개의 확장팩으로 대변되는 문자 그대로 "밍한" 확장팩들로 인해 힘을 많이 잃어버렸다.
실바나스 등의 매력적인 캐릭터를 PC에 활용하거나 WoW 이외의 영역에서 터져버린 PC 관련 문제로 블리자드 전체가 홍역을 치르면서 신뢰의 문제도 생겼다.
WoW가 몰락하면서 유일한 대체재인 FF14가 주목을 받았고 수치상으로도 WoW를 뛰어넘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WoW를 주로 플레이하는 해외 유명 스트리머인 Asmongold가 FF14를 시작하고 신규 유입이 정말 서버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늘었다.
당시 Shadowland 확장팩은 정말 말 그대로 할 게 없었다.
다른 WoW 스트리머들도 FF14에 관심을 많이 가졌고 Asmongold도 평소 관심이 없었지만 FF14를 시작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WoW만 하던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원인으론 블리자드의 실책도 있지만 FF14의 "게임"으로서의 완성도를 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왜 FF14는 높은 완성도를 유지할 수 있었는가?
위에 꼽은 3가지가 그대로 적용된다.
일본 게임들은 PC 장난질을 절대 치지 않는다.
현재 닌텐도 대표이사 펠로우 직을 맡고 있는 미야모토 시게루(宮本茂)는 모 인터뷰에서 게임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있냐고 질문을 받았을 때 이렇게 답했다.
저는 메세지를 전달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 제가 게임을 만드는 이유입니다.
나는 메세지를 전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게임도 예술작품이니까.
그림, 음악 등으로 메세지를 전달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게임은 결국 재미있지 않으면 그 존재 가치가 없다.
메세지도 즐겁게 전하면 좋지 않은가?
일본 게임들은 개발자들이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있다.
그걸 어떻게 확인하냐고 할 수 있는데 정말 잘 만든 게임은 플레이하면 티가 나는 법이다.
특히 FF14는 특유의 최적화, 매우 적은 버그가 인상적이고 스토리라인에 있어서도 프랜차이즈의 오랜 팬에 대한 존중이 가득하다.
세세한 디테일을 챙기는 것은 보통의 관심으론 불가능 한 것이다.
서양의 게임들도 저런 존중이 10여년 전만 해도 가득했었다.
최적화는 개선하고 눈에 띄는 중요한 버그가 있으면 즉각 고쳤다.
요즘은 버그가 몇년간 방치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오픈베타 때 있던 버그가 정식 릴리즈 후 1년이 지나도록 방치돼있는 걸 보면 오만 생각이 다 든다.
되려 버그를 제보해 준 플레이어를 조롱하는 회사도 있다.
어딜가나 보이는 행태지만 유독 요즈음의 서양 회사에서 많이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일까?
일본 게임들은 게임에 몰입할 수 있는 합리적 전개를 제시한다.
이제 서양에선 스토리라인을 진행하는 싱글플레이어 모드를 만드는 데 인색하다.
결국 돈을 벌어다 주는 것은 멀티플레이어이기 때문에 이에 집중하는 것은 합리적 선택이라 할 수도 있다.
그래도 게이머들은 납득이 필요하다.
멀티플레이어라고 해서 그냥 던져두면 끝이 아니다.
시리즈 최초로 싱글플레이어를 없앤 「Call of Duty : Black Ops 4」를 생각해보자.
당황스러웠지만 그만큼 속이 꽉 찬 멀티플레이어 UX를 기대했으나 속은 텅 비어 있었다.
이게 60달러짜리 풀프라이스 AAA 게임이라곤 믿을 수 없었다.
돈 낭비란 이런걸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일본 게임들은 진부하더라도 게이머들을 납득시킬 합리적 전개를 보여준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앞의 5수가 그려지는 그런 뻔한 전개라도 넣어준다.
뻔하다는 것은 그만큼 오랜 기간 많은 작품에서 써 왔다는 뜻이고 왕도라는 뜻이다.
일단 완전히 망가졌다는 소리는 듣지 않는다.
"우리들의 싸움은 계속된다." 같은 엔딩은 진부하다고 욕은 먹을지언정 왕도대로 걸어왔다면 개연성을 문제삼지 않는다.
FF14는 착실히 왕도를 걸어왔고 왕도에 자신들의 스타일을 더해 꽤 괜찮은 스토리를 전개하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게임 역사에 남을 스토리인 FF14가 신생하는 스토리는 일본이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 일부러 한국 게임 얘기는 하지 않았다.
패키지 게임을 좋아하는 내 입에서 결코 좋은 소리가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나만 피곤해지는 일이다.
한국 회사들 기술은 참 좋은데 그 기술이 향하는 방향이 아쉽다.
역시 돈이 덜 되기 때문일까?
앞으로를 지켜볼 수 밖에 없겠다.
머리속에 떠오르는 그대로 글을 쓰느라 좀 정리가 되지 않은 느낌이다.
하지만 그 만큼 날것이라는 소리니 내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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