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틱」이 무엇인가? 이는 본디 '네이버 덕후'를 줄여 '네덕'이라고 부른 것을 야민정음을 통해 '비틱'으로 변화한 말이다. 네이버 카페 등지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사람들이 뽑기 등에서 좋은 것이 나왔음에도 "1일차 뉴비 단챠로 한정캐 뽑았는데 이거 좋은건가요? 다른거 뽑고 싶었는데~" 같은 전진후퇴식 자랑을 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은근히 살살 골려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갤러리에서 좋은 인상을 받지 못한 탓이다. 그런데 이런 것이 생긴 지는 그리 얼마 되지 않았다. 과거엔 어땠단 말인가?
2000 ~ 2010년 정도를 생각해 보자. 아햏햏과 합필갤의 전성기 시절의 사이쯤일까. 이 때는 누군가 좋은 걸 먹었다고 글을 올려 자랑하면 사람들은 솔직하게 다음과 같이 축하해 줬다. "아 씨발 개부럽네 ㅊㅋ한다 개추 누르고 감". 이 얼마나 좋은가? 남의 행운이 부럽고 질투 나기도 하지만 모두가 축하해 주는 분위기였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그 시절의 느낌은 이랬다. 단순히 이런 것들을 떠나서 생각해도 옛날이 더 순수한 재미가 넘치고 인간성이 살아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뿐일까?
요즘의 예시로 던파 채널의 공지를 가져왔다.
'미스트 기어'는 그 지랄 맞은 입수 난이도와 성능으로 던파 유저 모두가 얻기를 원하는 아이템이며 현 던파 시즌 최악의 아이템이다. 그렇기에 '비틱'이 꼬일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갖고 있다. 미기는 던전에서 드랍으로 얻거나(일반 미스트 기어) 특정 아이템을 모아서 교환(정가 미스트 기어)할 수 있다. 게임을 오래 하기만 하면 얻을 수 있는 정가 미기와 갑자기 드랍된 미기는 그 느낌이 다를 수 밖에 없다.
내가 방금 던전을 돌다가 미기를 먹어서 그걸 던챈에 자랑하려면 위 공지에 쓰인 대로 특정 탭을 걸고 나서 먹었다고 글을 써야 한다. 그 이외의 탭으로 하면 차단이다. 이건 이 채널의 룰이니까 존중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이런 룰이 생기게 된 현재의 인터넷 문화다. 시간이 지나면 발전해야 하는데 퇴보만 거듭하고 있다.
이러한 역겨운 흐름의 탄생 배경에 대해 짚이는 점에 꽤 있으나 그중에 몇 가지만 골라보고자 한다. 그 원인으로는 다음의 세 가지를 지목할 수 있다.
1. 저연령화
2. 낮은 문해력
3. 쿨찐
1. 저연령화
물론 그 시절에도 미취학 아동이나 초등학생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접속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스마트폰 자체가 존재하지 않거나 보급이 극히 되어있지 않은 시대였다. NATE 버튼을 누르면 요금 폭탄이 터지기 때문에 함부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었다.
어린 자녀들이 컴퓨터를 사용하여 커뮤니티나 채팅을 하는 것이 어른들 눈에 좋게 보이지도 않았다. 따라서 인터넷 사용자의 평균 연령은 지금보다 훨씬 높았고, 어느 정도 사고가 정제된 성인들이 훨씬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의 시대. 언제 어디서나 스스로의 병신력을 뽐낼 수 있는 완벽한 환경이 갖춰졌다. 통제를 받지 않으니 더 무서운 것이다.
통제된 환경이 아니라는 점에서 파생되는 문제는 다음으로 이어진다.
2. 낮은 문해력
교권이 말도 안 되게 추락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허벅지에 불나도록 맞아보는 것이 흔했던 시절. 강한 교권은 강한 통제력을 상징한다. 가정에서도 부모의 권위가 있었다. 윗사람들로부터 통제를 받으니 비교적 바른 길로 향할 수 있었고 기본적인 사리분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더군다나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과도기 같은 느낌인 때라 책과의 거리도 결코 멀지 않았다. 책을 본다는 것은 정제된 논리가 있는 문장에 접한다는 의미이다. 의식하지 않는 사이에 문해력이 향상된다. 타인의 주장을 이해함은 물론,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데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요즘은 확실히 시대가 변했다. 완벽한 디지털 시대며 초등학교조차 들어가지 않은 아아에게도 스마트폰을 사준다. 우는 아이에겐 유튜브가 특효약이라고 하던가. 부적절한 컨텐츠에 노출될 확률 또한 올라간다. 보다 자극적인 영상을 찾아다니다 보면 정상적 언어 교육이 될 리가 만무하다. 짧은 시간에 자극적인 것을 쏟아붓는 형식이다 보니 깊고 길게 생각할 시간도 이유도 없다. 책과의 거리가 멀어지니 말하고 듣고 쓰는 능력이 키워질 수가 없다.
이런 환경에 장시간 노출되었을 지금의 초중학생 세대는 물론이고,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에 대해서도 이러한 일이 반복될 것이 자명하다. 글은 알아도 내용을 모르는 「실질적 문맹」이 양산되는 것이다. 국가적 비상이라 할 수 있다.
3. 쿨찐
쿨찐이란 무엇인가? '쿨한 척하는 찐따'의 준말이다. 자신의 논리가 틀렸음에도, 자신이 잘못했음에도 이를 깔끔히 인정하지 않고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쿨한 척' 하며 회피하는 행태가 보이기 시작했다. 겉으론 쿨한 척하면서 속은 분노와 슬픔으로 무너지고 있다.
왜 쿨찐이 생겼을까. 동북아 특유의 '지면 죽는다'의 문화가 문제일까? 쿨하게 있으면 자신은 패배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타인과의 키배에서 패배했다는 결과를 얻고 싶지 않기 때문에 쿨한 척하며 회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러니 당연히 얻을 게 있는 논리적 대화가 불가능하다. 내가 틀렸다는 것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나도 이전에 커뮤니티에서 논쟁을 벌일 때 딱 한번 내 주장의 문제점을 지적당해, 분노가 차오르며 창피하기도 했으나 내가 잘못됐음을 인정하고 내가 배워가는 시간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이것과 관련해 떠오르는 일본의 속담이 있다.
聞くは一時の恥、聞かぬは一生の恥
"묻는 것은 순간의 부끄러움, 묻지 아니하는 것은 평생의 부끄러움"이라는 말이다. 과연 어울리는 말이다. 자신이 무지하거나 틀림을 인정하고 도움을 구할 수 있다면 그것이 결국 자신을 위한 길이다. 하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말로만 내뱉으며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이 동네가 변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수많은 쿨찐들을 양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스스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몰라 시니컬하게 굴며 타인의 행복을 순수하게 축하해주지 못한, 시기만을 가지는 행태에 반복되며 현재의 '비틱 차단'을 만든 것이 아닐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했던가. 질투에 아프지 말고 내 일처럼 기뻐하며 같이 웃어주어서 배가 아플 수는 없는가. 인간성의 사막화에 나도 말려들지 않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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